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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 설교자 : 최대광 목사
  • 본문말씀 : 마가복음6:55-7:23
  • 날짜 : 2018-09-02
  • 글쓴이 : 관리자
  • 등록일 : 2018-09-02 오후 4:06:07
  • 조회 : 568

그리스도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6:55 – 7:23

 

  1.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사실 설교를 시작할 때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말씀이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2. 오늘 그리스도의 평화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먼저, 평화란 무엇일까요? 한자로 된 平和를 보면, 평자는 두 사람이 상 위에 앉아있는 상형문자이고, 화자는 쌀 미자와 입구자가 합쳐서 된 회의문자입니다.

     

  3. 평화를 풀어서 보면, 둘이 상 위에 앉아서 밥을 먹다, 바로 이것이 평화의 뜻입니다. 불편한 사이라면 단 둘이 앉아 먹는 것이 쉽지 않죠. 물론 필요에 따라 그래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둘이 앉아 먹는 관계는 편한 사이입니다.

     

  4. 이렇게 보면 성경 안에서도 먹으면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옵니다. 유월절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고,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 음식, 곧 소와 양을 나누어 먹었고, 광야에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오면 오천명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나누어 먹죠.

     

  5. 최후의 만찬에서도 예수께서 제자들과 음식을 나누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구워 주십니다. 물론 스스럼 없이 같이 나누어 먹는다 하는 점에서 평화스럽다 할 수 있겠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면, 먹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예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이 평화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백성들이 제사를 드릴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흠향하시며 이들과 함께 계셨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을 때에도 백성들은 그날 치 음식을 저장해서 그 다음날 따로 먹었던 것이 아니라 함께 먹었고, 하나님께서는 함께 먹는 이들과 같이 계셨습니다.

     

  7. 오 천명을 먹이실 때에도 예수께서는 사람들과 같이 계셨죠. 최후의 만찬과 부활한 후에 음식을 나눌 때에도 이들과 같이 계셨습니다.

     

  8. 그렇다면, 평화란 예수와 함께 있는 것이렇게 고쳐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뇌성마비로 몸을 잘 쓰지 못했던 송명희 시인의 아름다운 시가 있죠. “예수님 계시니라는 시 입니다:

     

천국에 금이 있어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오

천국에 은이 많아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오

예수님 계시니 예수님 계시니

 

천국에 보화 있어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오

천국에 면류관이 있어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오

예수님 계시니 예수님 계시니

 

  1.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녀도, 예수께서 나와 함께 계시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궁궐 같은 집에 살아도 예수가 없으면 그곳은 천국일 수 없죠. 신앙이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입니다.  

     

  2. 존재함이란 한마디로 그냥 있는 것이죠. 주님과 함께 있는 것,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 바로 이 존재함이 신앙이라는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있어 행복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 교회에 다니면서 교리와 신학을 배우면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으니, 당신이 없으면 영생이 없으니, 예수께서 계신 곳이 천국입니다.

     

  4. 그런데 신앙의 연조가 오래되고, 예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 이렇게 말씀하시죠: 예수가 있어 천국입니다. 이유 없이 그와 함께 있으니 천국입니다. 과거에는 이유와 조건이 있지만, 이제는 그냥 사랑합니다.

     

  5. 하나님께서는 조건과 보상 없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 이유없이 하늘의 해와 비를 내려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 이유 없는 것, 조건 없는 것, 바로 이를 기독교 신앙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브갓네살이 만든 거대한 신상에 절하라는 명을 어긴후에 풀무불에 던져질 때, 이렇게 말합니다: “3:17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18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7.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렇다는 조건이 없더라도, 우리는 하나님만 사랑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평화와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8. 오늘 우리의 본문도 먹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그 교훈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내적인 평화에 관한 말씀으로 결론이 납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오늘 본문 71절에서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7: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1. 바리새인과 서기관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고 했지요. 바리새인이라면 랍비였습니다. 요즘 말로 그냥 목사라고 이해하는 것이 빠를 겁니다. 그리고, 서기관은 신학자입니다. 예루살렘이란 성전이 있는 도시이니, 성전에서 나온 목사와 신학자들이 예수 주변에 모여들었다 이 말씀입니다.

     

  2. 왜 몰려들었을까요? 이들은 성전에서 나와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여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와 만나 치유되는 병자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모인 것도 아닙니다. 본문 72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한마디로 보기 위해서 곧 감시하기 위해서 예수 주변에 모인 것이지요. 성전에 갔다 오면 하나님 앞에 선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야죠. 왜 남의 잘못과 꼬투리를 찾아내려 합니까?

     

  4. 그래도, 우리 역시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습니다. 비누로 씻을 수 없으면 식당에서 물수건을 줍니다. 위생상 그런 것입니다.

     

  5. 제자들이 손 안 씻고 음식을 먹으니, 불결해 보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손 안 씻고 음식을 먹어서 병균이 입에 들어간다면, 먹는 사람 손해죠. 제자들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다 자란 어른 입니다. 어른이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 입니다.

     

  6. 만일 예수께서 유치원 원장이시고,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 그 어린아이들의 학부모라면 예수께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죠. 왜 손 씻는 교육을 안 시키십니까?

     

  7. 그런데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이 도전한 것은, 이런 어린아이들의 위생에 관계된 말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3절과 4절은 이들의 눈에 거슬리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장로들의 전통에 의해 손을 씻지 않고는 음식을 먹지 않고, 시장에서 돌아온 후에도, 물을 뿌리지 않고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고, 그 외에 여러가지가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었다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8.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은 위생에 관해서 말했던 것이 아니라, “왜 전통을 지키지 않느냐?” 이 말이죠. 당시 성서를 해석하던 주석에 미쉬나라는 책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음식을 먹기 전에 팔꿈치까지 씻고, 컵과 접시를 씻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9. 이때 예수께서는 제 7절에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하시면서, 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10.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명은 율법이고, 사람의 전통은 미쉬나, 곧 장로들의 전통입니까? 그러니까 잔말 말고 성경에 있는 대로 그대로 해라 이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않죠. 여러분 탈무드라고 아시죠. 탈무드는 그냥 유대인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11. 탈무드는 모세오경이라고 하죠.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민수기, 5권의 책4이 구약성경에서는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모세 오경이라고 하던지 아니면 토라 라고 합니다.

     

  12. 이 토라를 해석하는 책이 탈무드 입니다. 탈무드를 읽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모두 다 이야기로 되어 있죠. 이야기를 통해서 토라를 해석하는 것, 바로 이것이 유대인들이 말씀을 풀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왜 푸느냐? 바로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푸는 것입니다.

     

  13. 홍해가 갈라졌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갈라지는 홍해와 떨어지는 만나가, 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성서의 말씀과 오늘 나의 삶이 만나지 않겠습니까? 만나는 그 자리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14. 예수께서도 천국에 관해 비유로 곧 이야기로 말씀하셨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을 위해 겨자씨와 씨앗의 이야기를 해 주셨고, 나그네들을 위해 진주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을 위해 집 나간 탕자의 이야기를 해 주셨죠. 이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깨우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15. 탈무드는 한마디로 주석책 이었습니다. 탈무드만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하는 미쉬나역시 성서를 해석하는 도구였습니다.

     

  16.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명은 괜찮고 미쉬나는 잘못됐다라고 한다면, 이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17. 만일 예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는다면, 성경은 괜찮고, 이것을 해석하는 저와 같은 목사는 다 잘못됐다는 말씀입니까? 밑에 층에 있는 목사님들 방에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주석책은 다 가지고 계십니다. 영어로 됐건, 우리말로 됐건, 성경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주석책은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대단히 소중한 책입니다.

     

  18.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는다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굉장히 많고,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들의 전통을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하면 무리가 되는 것이 많습니다.

     

  19. 예를 들어서, 레위기에서는 돼지고기를 못 먹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삼겹살 드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입니까? 이 뿐만 아닙니다. 고기는 피째 먹지 말라고 했으니, 고기를 드실 때, 물에 담궈서 피를 뽑거나, 소금에 넣어서 피를 뽑아내 놓고 먹어야 합니다. 그렇게들 하십니까?

     

  20. 비늘이 없는 생선은 먹지 말라고 했으니, 국민생선인 고등어와 꽁치를 드신다면,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것입니다. 꽁치하고 고등어에 비늘이 없죠. 교회 앞에 맛집이 있죠. 추어탕. 미꾸라지도 비늘이 없습니다.  

     

  21. 그런데, 오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전통이라는 것은 오늘 본문 제 10절에서 11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1. 율법에는 부모를 공경하라 했지만, 고르반이라고 하면 다 된다는 겁니다.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란 뜻입니다.

     

  2. 돈이 생기면 부모님을 공양해야 하는데, “이건 고르반이야이렇게 말해 버린다는 겁니다. 이거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까 안돼, 이렇게 말하면서,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자기가 쓴다는 겁니다.

     

  3. 양을 한 마리 잡으면, 부모님께 갖다 드려야 하는데, “이거 고르반이야이렇게 말하면서 안 드립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먹는다는 거죠. 예수께서는 바로 이것이 사람의 전통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사람의 전통을 따른다, 이 말씀을 우리식으로 고쳐서 풀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척 하면서, 자기 욕심을 채우려 한다바로 이 말씀인 것입니다. 아니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계명을 이용해서,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 잇속을 채운다이 말씀이지요.

     

  5.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성전에서 나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척 하면서, 예수와 제자들의 흠을 잡으려고 했던 겁니다. 이들은 눈으로 보았다 하지만, 문제는 눈이 아니라, 이들의 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6. 고르반은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성별 해서 바친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입니까? 미쉬나도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고 그릇을 씻는다는 것이 무엇이 잘못됐다는 말씀입니까?

     

  7. 그런데 이렇게 좋은 것도,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면, 악한 것으로 나온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고르반도 아니요, 미쉬나도 아니고, 성경의 율법도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교훈과,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 있어도, 이것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한다면, 악한 도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8.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면서 나오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정동제일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외람되게 교회 이름까지 거론한 이유는, 우리는 지금 개신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9. 지난 818일 경향신문 헤드라인제목이 무엇이었는가 하면,“이게 종교냐?”였습니다. 그 기사의 일부를 제가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목불인견. 이 한마디로 현재 한국 종교계의 상황은 요약된다.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조계종은 사상 초유의 총무원장 탄핵이라는 사태를 맞았으며, 세계 최대의 장로교회인 명성교회는 변칙적 세습으로 지탄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권력과 돈에 집착한 종교계가 벌이는 볼썽사나운 싸움이 사회공동체에 균열과 상처를 내고 있는 형국이다. 금권에 매몰된 종교계의 모습에이게 종교냐는 분노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0. 저는 어릴적부터 주님의 피 값으로 산 교회라는 말씀을 자주 들었습니다. 교회란 그토록 신성한 것이고,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잃은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1. 어릴적 텔레비전에서 했던 다큐멘터리가 기억납니다. 인터넷을 한참 뒤져 보아도 알 수 없어서, 기억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가톨릭 방송인 평화방송이 나오기 전이었습니다. MBC 아니면 KBS였을 겁니다.

     

  12. 우리나라의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신부와 정조때, 17세에 장원급제를 한 황사영이 천주교인이 되어서 24살 정말 꽃다운 나이에 능지처참을 당했던 이야기도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순교자들의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앵커의 마지막 멘트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기억하십시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13. 당시가 80년대초반쯤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부흥하는 한국교회를 보면서, 바로 이들의 순교의 피가 수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고 전하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14. 주님의 뒤를 따라 순교의 피를 뿌리며 지켜낸 것이 한국교회였습니다. 가톨릭에 비하면, 전혀 따라갈 수 없지만, 개신교 역시 순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와 역사가 비슷한, 저 시청 앞의 성공회주교좌성당에는 6.25때 순교한 사람을 기리는, 순교자 기념탑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조용호신부인데, 그 아버지가, 아펜젤러 목사님의 비서였다가 같이 순직한 조한규씨입니다. 부자가 모두 교회를 위해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15. 그리고 요 앞에 구세군도 6.25때 다섯명의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개신교 안에도 교회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숭고한 전통이 있었던 것이죠. 강화도에는 대단히 아름다운 신앙의 이야기들이 많지만, 한날 한시에 예수를 믿었으니, 그 이름을 일자 돌림으로 다 바꾸고, 흰 옷을 입는 우리나라 전통과는 달리 검은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16. 그만큼 행동을 절제하면서, 기독교 신앙인으로 살려고 했던 것이었죠. 동네사람들은 손가락질 하면서 저기 검은 강아지 간다이렇게 놀렸다고 합니다. 돌림자를 쓰는 이유는 항렬을 알기 위해 쓰는 것인데, 모두 다 일자돌림으로 개명했으니, 이름만 보면, 누가 아저씨이고, 누가 삼촌인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1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날 한시에 예수를 영접하고, 신앙인이 되었고, 성별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더더욱 귀하기 때문에 이들은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키면서 살아갔던 것 아니었겠습니까?  지금도 강화 홍의교회 앞마당에 가면, 일자 돌림 성을 가진 사람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비석들이 모두 다 일자 돌림 입니다.

     

  18. 일제시대 때에도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역시 고난과 순교를 당했던 많은 주기철 목사와 같은 분과, 평신도 기독교인들도 있었지 않습니까? 이렇게 지켜낸 교회가 한국교회인데, 이제 세상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신문에서도 이게 종교냐?” 이렇게 비아냥대고 있지 않습니까?

  19. 명성교회는 잘 아시겠지만, 장로회 노회에서, 명성교회는 세습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려 주었습니다.

     

  20. 담임목사가 은퇴한 이후 바로 취임한 것이 아니라, 은퇴한 이후에 시간이 좀 지나서 아들 목사가 담임목사가 된 것이니, 세습이 아니라 정당한 경쟁에 의해서 된 것이라는 논리 입니다.

     

  21. 세상에 이것을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제발 나로 하여금 믿게 좀 해주십시오. 교회는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운 주님의 전입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신앙을 가르쳐 주었고, 또한, 신앙을 지켜주었습니다. 그래서 신학에서는 교회는 성령의 역사 안에 있다고 하여서, 교회론을 이야기 할 때마다 성령론이 빠지지 않습니다.

     

  22. 교회란, 하나님의 계명이 지켜져야 하는 곳이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교회를 보고 있습니까?

     

  23. 이미 기독교는 역사상 수 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죠. 중세 때, 기독교는 십자가를 앞세워 무수한 살육을 범하지 않았습니까?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란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 아닙니까? 바울이 갈라디아서 220절에 고백했듯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24. 사람들은 가장 거룩한 십자가까지도 왜곡하여 살육의 상징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인 고르반도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도구로 사용했고, 정결하자는 예식도 남을 비방하는 덫으로 사용했습니다. 주님의 피로 이룩하신 이 교회까지도,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25. 바로 이것이 사람의 전통이라는 것이죠. 이 사람의 전통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 제 15절에서 16절까지 무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26.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않고 먹었다 하여 이것이 제자들의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안에서 나오는 그 악한 것들이, 하나님의 계명도, 예수의 십자가도, 성경도 왜곡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멀리하고, 사람의 전통을 세워나간다는 겁니다.

     

  27. 이에 제자들이 묻죠. 도대체,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에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 21절에서 23절까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21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1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 속에서, 마음에서 이런 악한 것들이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에서 이런 악한 것들이 나와 성경의 말씀을 왜곡하고 사람의 전통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은 악한 것이란 말씀입니까?

     

  2.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720절에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 임하느냐고 예수께 물었을 때, 이때 예수께서는 21절에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3. 온갖 악한 것도 우리 안에 있고, 하나님의 나라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서 선한 것도 나오고 악한 것도 나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에서 23절까지 예수께서는 이 악독한 것들을 열거하고 계시지만, 당신의 말씀을 하나로 요약할 수 있죠. 이들 모두는 이기적인 욕망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자기의 이익을 위한 욕망이 남을 해치려는 악한 생각과 비방을 만들어 내고, 자신의 쾌락을 위한 욕망이 음란함과 음탕함과 간음을 추구하게 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한 욕망이 도둑질과 탐욕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높아지려는 욕망이 교만과 우매함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5. 이기적인 욕망이 사람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계명까지도 삼키어 사람의 전통으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6. 그러나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7. 하나님의 나라의 마음은 사람을 살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었던 앞선 본문 마가복음 655절에서 56절까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6: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56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1. 예수께서 어디에 계시던지, 사람들은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왔다고 했고,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장에 있던, 도시에 있던, 마을에 있던, 예수님 계신 바로 그곳에서 치유함이 일어났다고 말씀은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2. 천국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는 곳이고, 겨자씨 한 알이 변하여 새들이 깃드는 나무가 되는 곳입니다. 예수께서 계신 곳, 바로 그곳에서 치유와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일어난 것입니다.

 

  1. 그렇다면, 우리 안에 버릴 것은 버리고 살릴 것은 살려야, 내 안과 밖에 하나님 나라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안에 예수를 살리고 나를 향한 이기적인 욕망을 죽여야, 하나님 나라가 내 삶 속에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2. 마태복음 53절에서는, 바로 이것을 심령의 가난함이라고 했고, 심령이 가난한 그 사람이 천국을 소유한다고 했습니다. 심령의 가난함이란 마음의 가난함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내 이기적인 욕망이 사라진 사람, 그래서 천국만이, 천국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마음에 충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이 사람은 발길 닿는 곳 마다 천국입니다. 마을이건, 시장이건, 도시이건 농촌이건, 아골 골짜기라도, 모두 다 천국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 가난한 마음 안에 예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4. 예수께서 계신 그 천국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은, 앉은 이곳이 천국이요, 집안에 들어가면 그곳이 천국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5. 마음 속에 악한 것을 품어 그대로 살면 내 주변은 지옥으로 바뀝니다. 마음속에 예수가 살아, 천국이 드러나면, 나와 내 주변은 천국으로 바뀝니다.

     

  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 안에 그리고 우리 모두 안에, 하나님의 계명이 있고, 사람의 전통이 있습니다. 온갖 악한 것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내자신의 욕망이 있고 또한, 예수께서 계십니다.

     

  7. 신앙생활이란 살릴 것은 살리고, 버릴것은 버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마음 속에 예수를 살리기 위해 이곳에 나오셨으니, 오늘도 나를 떠나 예수께로 향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금이 있어 천국이 아니라, 예수님 계셔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면류관이 있어 천국이 아니라, 예수께서 계셔서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8.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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