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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역사로 기억하라

  • 설교자 : 강호근 목사
  • 본문말씀 : 마태복음 14:22-33
  • 날 짜 : 2019-03-24
  • 글쓴이 : 관리자
  • 등록일 : 2019-03-24 오후 4:34:41
  • 조회 : 760

승리의 역사로 기억하라

본문 마태복음 14:22-33

 

찬양대의 귀한 찬양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닿는 시간, 성령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시간, 기도의 응답과 신앙의 결단이 있는 시간, 거룩한 주일예배에 참석하신 정동제일교회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오늘 마태복음 1422-33절의 말씀에 의지해서 승리의 역사로 기억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질문 한 가지 드려봅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번 희생하여라, 2번 사랑하여라, 3번 두려워 말라. 마음속으로 선택해보시기 바랍니다. 모를 때는 긴 것이 답인데, 다 비슷비슷해서 어렵지요?^^* 답은 3두려워 말라입니다. 성경에서 두려워 말라는 표현은 무려 366번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는 이 말씀을 왜 이렇게 많이 하셨을까요? 여러 이유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인생이 퍽퍽하고 힘겹고, 두려움에 쉽게 빠진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신다는 겁니다. 그래요. 잠시 생각해 보면 삶의 어려운 문제와 고민으로 인한 걱정, 염려, 근심, 두려움들이 우리를 잠식하게 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물론 두려워해서 해답을 얻고, 두려워함으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두려워함으로 고민과 걱정이 해결된다면, 성경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이유가 없겠지요. 두려움은 단순히 감정이 흔들리고 상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영이 죽고 사는 문제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 영역에서의 두려움은 우리의 신앙과 믿음의 뿌리를 흔들고, 결국 믿음의 상실이라는 거대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마귀사탄은 간교한 방법과 상황, 술책을 이용해서 우리 삶의 자리에서 두려움을 조장합니다. 오늘 바로 이 극한의 두려움과 마주하게 된 예수님의 제자들이 본문에 등장합니다. 함께 말씀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22절의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22.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재촉이란 무슨 뜻입니까? 어떤 일을 빨리 하도록 조르는 것입니다. 원문을 보면 이 재촉의 의미가 보다 명확해집니다. 재촉의 뜻을 지닌 헬라어 에낭카센억지로 시키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신앙사건은 주님의 의도와 계획이 녹아 있는 사건이라는 큰 풀이의 해석이 가능하게 됩니다. 즉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억지로 바닷가로 나가 배에 태워 보내셨습니다. 더군다나 재촉하다라는 단어 앞에 있는 즉시라는 부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의도와 계획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곧 큰 혼란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24절을 읽겠습니다.

 

24.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배가 떠나게 되었습니다. 육지로부터 멀어진 배는 점차 거세어지는 바람과 물결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물음표를 던지게 됩니다. ? ?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배에 태워 풍랑을 만나게 하셨는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오늘 낮에 있었던 사건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 낮에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기적은 제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기적임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동안 보여주셨던 수많은 치유와 회복의 기적들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들은 자신의 세상적인 욕심마저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이 주님께 있음을 봤던 것입니다. 음식이 상징하는 것, 육신의 배고픔을 채워준다는 것의 의미는 바로 세상 가치도 예수님께서 마음만 먹으시면 얼마든지 무한정 제공해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이 제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습니다. 설레게 했습니다. 그동안 의식 저편에 눌러두었던 정치적인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이라는 기대, 자신들도 세상의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오병이어의 그 기적은 풍성한 은혜요, 주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일깨워주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였지만, 동시에 그 기적은 제자들의 신앙을 송두리째 변질시켜 버릴 수 있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사탄이 이런 제자들의 욕망을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럴 때 사탄은 강력하게 역사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체험하고 감사와 기쁨을 누릴 때, 바로 그때를 이용해서 우리 신앙의 방향을 왜곡하고 잘못된 쪽으로 돌리게 합니다. 주님께선 이와 같은 제자들의 상황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정한 믿음의 자세가 무엇인가를 알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방향을 돌이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죽음의 상황으로 내몰았습니다. 역시나 예수님의 생각이 맞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수많은 기적과 하나님을 말씀을 듣고 따르던 제자들이었지만, 죽음의 상황 가운데에서 담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뿐 아니라 그동안 그들이 주님을 믿고 따랐던 모든 것들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오직 그들의 눈 앞에는 거대한 폭풍과 바람, 그리고 금세라도 뒤집혀버릴 것만 같은 배 위의 공포만이 놓여 있었습니다. 25절과 26절을 읽겠습니다.

 

25.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아멘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당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 가운데로 나타나셨습니다. 그것도 그냥 나타신 것이 아니라 밤 사경에 나타나셨다고 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자 마태는 로마식 시간법을 활용해서 밤을 넷으로 나눴는데, 4경은 새벽 3시부터 아침 6시까지를 말합니다. 가장 늦은 시간에 주님께서 나타나셨다는 것은 그들의 공포가 가장 극에 달했던 순간이요, 동시에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따라하겠습니다. 믿음은 두려움 앞에서 증명된다.

바로 그때입니다. 제자들이 참으로 기막힌 말과 행동을 합니다. 물론 밤새 겪은 풍랑의 고초와 목숨을 위협하는 고통은 이해합니다만, 배 위에 제자들은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유령이라 말합니다. 예수님을 귀신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실체를 알 수 없는 허상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바로 26절 제자들의 말을 주목해 주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유령이라 부르고, 공포에 질려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런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27.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아멘

 

우리에게 많은 아픔과 슬픔, 시련이 있을지라도, 누구보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잘 아시는 분은 바로 주님입니다. 커다란 진리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제자들을 사지로 보내셨지만, 누구보다도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아시기에 주님께서는 오늘 그들에게 곧바로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 가지 인생의 풍랑 속에서 아파하시는 분들을 향해서 말씀에 의지하여 선포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아픔과 슬픔과 시련과 고난의 상황을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고 절망적인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즉시 이르십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씀이 나에게 주신 위로요, 우리 기도의 응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음성과 주님의 마음을 헤아린 이들이 제자들 전체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상황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배에는 분명 예수님의 제자 12명이 타고 있었건만 베드로만이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고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28-2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28.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아멘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베드로만이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고, 주님의 마음을 이해했으며,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모두 배 바닥에 납작 엎드려 고개도 들지 못하고 귀신이다, 유령이다 소리 지를 때, 베드로는 그 알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을 향하여 이렇게 재차 묻습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고 하십시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왜? 곧장 물 위로 뛰어들지 않고 다시 묻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덮어놓고 두려움 가운데서 결단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용기를 가지고 모험에 가까운 결단을 하면 된다는 것을 말하려 함이 아닙니다.

믿음은 시험을 통해 증명되는데, 그 믿음을 훈련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나에게 주시는 시련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나를 구원해 주실 유일한 구원자이신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셋째, 던진 질문에 대한 주님의 말씀에(주님의 보여주시는 기적이 아니라) 순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밝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환란 가운데에 분명한 주님의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의도와 생각에 반응하는 것인지를 고민하며 묻고 있습니다. “만일 주님이시라면, 이 상황은 만드신 것도, 지금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도, 그리고 이 폭풍과 환란가운데서 우리를 구하실 이도 주님이시거든, 나에게 명령하셔서 물 위로 걸어오라 하소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순종의 요청이 더욱 귀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만일 진짜 주님이시라면,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그 구원의 현장으로 초대해 달라는 나를 명하사라는 믿음의 요청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주님의 음성과 뜻에 반응하길 원하실 때, 순종하기 원하실 때, 우리는 많은 위험과 희생이 요청되는 그 자리에 서는 것을 얼마나 주저합니까? 그런 어려운 자리는 나 아닌 다른 이들이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지요. 그러나 오늘의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안심하라 위로하시며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 진짜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이시라면, 그 증거를 나에게 보여 달라는 베드로의 이 요청은 시대를 깨우고 변화시키는 그 역할을 감당하는 데 나를 써 달라는 요청과도 같기 때문입니다.(이사야 68,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러자 주님께서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29절 상반절을 읽겠습니다.

 

29.오라 하시니

 

그러자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지체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라! 오라, 베드로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히 이때 주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셨을 겁니다. 이제 주님의 마음과 명령은 분명해졌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오라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배에서 뛰어 내립니다. 놀랍게도 바닷물에 닿은 발이 물속으로 잠기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바다 위에 예수님처럼 섰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떼며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배에서 내렸다는 것을 저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따라 할까요? 세상에서 내가 믿고 있었던/ 바로 그것들과의 결별이다. 사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면서, 정작 우리의 행동과 태도는 그와 반대일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천국의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세상 가치를 원합니다. 기도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심을 이뤄 달라는 기도를 드리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세상의 참 많은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내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신뢰합니다. 학벌, 재산, 좋은 직장, 능력 있는 부모, 좋은 인맥 같은 것들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과 똑같지 않습니까? 우리 삶의 수많은 여정에서 베푸신 사랑과 은혜와 기적들이 있지만, 주님의 말씀의 진리보다는 보여주시는 기적에만 우리의 마음이 쏠려 있고, 그 기적만을 기대합니다. 또한 오늘처럼 거센 풍랑과 폭풍을 만나게 될 때에는 두려움에 매몰되어 그 사랑과 은혜를 모두 망각해 버립니다. 나를 구하기 위해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도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고, 그래도 풍랑 속에서 나를 지켜줄 것은 이 배뿐이라고 생각하며 꼼짝하지 않는 제자들과 우리의 삶이 정말 똑같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은혜의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재 배 위에 계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기 바다 한복판, 폭풍이 이는 저 바다 가운데 주님이 서 계십니다. 우리가 서 있어야 할 곳은 배인가, 바다 한복판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계신 바로 그곳에 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선택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바로 우리의 발걸음을 배에서 떼어 저 바다 물 위를 딛는 것입니다. 배 위에서 벌벌 떠는 제자들에게, 나를 지켜준다고 믿는 것들을 붙잡고 두려움에 떠는 우리에게, 베드로는 오늘 분명하게 신앙의 길을 제시합니다. 주님이 계신 저 바다 위를 향해, “오라!” 부르시는 그 음성을 향해, 두려움을 넘어 우리의 발걸음을 떼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0, 다 같이 읽겠습니다.

 

30.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물 위를 걸어갑니다. 하지만 주님과의 거리가 제법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가는 도중에 여전히 요동치는 물결과 파도에 그의 시선이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의 시선이 주님을 향하지 않게 되자, 그는 다시 두려워하게 되었고, 몸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난날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풍랑을 봤기 때문에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다며 그의 믿음 없음과 믿음의 연약함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물에 빠지는 이 상황만 부각하여 오늘의 말씀을 해석했습니다. 모두가 이 실패와 패배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저는 결단코 이 상황이 베드로의 실패, 패배, 연약한 믿음의 역사로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생활인 것입니다. 두려움과 떨림이 없는 믿음은 맹신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을 맹신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말씀의 시작에서도 분명하게 말씀드렸듯이 우리 인생의 파도가 험하고, 우리를 두렵게 한다는 것을 온 우주에서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분이 주님이시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래서 성경은 366번에 걸쳐서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임을 알아도, 그 음성에 반응해도, 여전히 몰아치는 인생의 파도와 풍랑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다가도 바람과 폭풍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눈 돌릴 수 있습니다.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역사하심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아직 주님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바로 그때! 바로 그때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냐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30절의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30.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했고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끝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소리 지릅니다. 누구에게? 주님께 외칩니다. 그가 소리 지르는 대상은 명확하게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배 위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이다! 귀신이다! 허상이다! 외치며 주님을 쳐다보지 않았을 때, 베드로는 그분을 향해 손을 내밀며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한 가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주님을 향해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바로 그렇게 베드로는 주님이 원하시는 반응을 했고, 예수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아 물 위로 끌어 올려주셨습니다. 할렐루야! (3초 인터벌) 31절에서 33절 말씀 읽겠습니다.

 

31.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아멘

 

31, 주님께서 믿음이 적은 베드로야, 왜 나를 의심했니?”라고 말씀하시지요? 이는 결코 주님께서 베드로를 질책하신 것이 아닙니다. 놀란 베드로를 다독이시는 주님의 위로로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배 위로 올라왔습니다. 풍랑은 잔잔해졌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배 위로 걸어오신 주님을 보고 제자들은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진리를 말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저는 오늘 이 신앙사건이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의 역사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 가게 되길 기원합니다. 결국 주님과 함께하면 승리합니다. 수많은 실패와 두려움에 빠져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지만, 그 실패의 흔적만을 좇으며 두려움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평생 패배자로 살아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님께서 내게 주신 시련의 이유를 알고, 주님께 나를 그 기적의 역사로 초청할 것을 간구하고, “오라!”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의 인생, 승리자의 인생을 고백하시겠습니까? 베드로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는 우리 인생을 꿈꾸며,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승리하는 믿음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정동의 온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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